창덕궁 근처에서 먹은 쌈밥 by xian

회사의 봉사활동에 차출되어 나가서, 잡풀이 우거진 곳의 풀들을 뽑았다. 내가 소속된 기업의 이름이 걸린 조끼를 입고, 고궁 깊숙한 곳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의 잡풀을 뽑았다. 사실 별로 한 일도 없었다. 그나마 비가 내려서 얼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한 달 전 일인데 지금 이 곳에 올리는 이유는... 원고가 이제서야 끝났기 때문이다.-_-;;)

어쨌거나 그런 노동이라고 하기도 좀 쑥스럽고 봉사라고 하기는 더욱 쑥스러운 일을 하고 난 다음 점심이 제공된다고 해서 먹으러 간 게 쌈밥. 원래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먹을 것을 기대했는데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결혼식이다 모다 하는 바람에 다들 먼저 가버렸기 때문에.(하기야 토요일이니 오죽하겠어)

나는 쌈밥의 고기가 무엇인지부터 보는데, 쌈밥이라고 해서 가면 '보쌈'류의 고기를 내놓는 데도 있고 양념 불고기를 내놓는 데도 있기 때문이다. 그 날 들른 쌈밥집은 잘 양념된 돼지 불고기를 내놓는 곳이었다.
역시 돼지고기의 자태는 이래야 제 맛이다. 그런데 저 고기 아무리 봐도 1인분이어야 적당할 것 같은데......(퍽)

아니 난 혼자 다 먹을 수 있다고...... (퍽퍽퍽)
싸 먹을 채소와 뚝배기에 내 온 강된장 같은 것들도 맛있었다.

나는 주로 무난하게 상추와 깻잎.
고기 못지않게 내 눈길을 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계란말이였다. 첫 번째 사진에도 예사 계란말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속이 꽉 찬, 그리고 매우 두꺼운 계란말이였다. 이 계란말이 가지고도 밥 한 공기 정도는 거뜬히 비울 수 있을 정도의(하지만 실제로는 밥 한 술 먹지 않고도 계란말이만 열 접시 작살낼 수 있을 정도의) 독보적인 맛이었다.
문득 저 날, 내가 땀을 흘리고 밥을 먹은 적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 봤더랬다. 내가 수고를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너무 가만히 놓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다가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면 나는 내 몸을 가만히 두든 말든 그 일이 끝날 때까지 또 그렇게 살 것이고,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서겠지.

내 마음 속의 파도와 폭풍은 내 머리와 내 정신 속에서만 그렇게 치고 있는데 내 몸은 노곤노곤하게 식어가고 있는 것. 참 대단한 부조화다. 그리고 그런 부조화 속에서 참 잘도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날의 쌈밥은 정말 맛있었다.


- The xian -

덧글

  • dARTH jADE 2008/10/14 18:28 #

    아 저 풍성한 야채, 특히 양배추가 눈길을 끄네요. 쌈밥집의 양배추 인심은 박하기 그지 없잖아요.
  • xian 2008/10/15 21:56 #

    저 집은 양배추 인심이 매우 좋더군요.
  • Elgatoazul 2008/10/15 05:09 #

    <내 마음 속의 파도와 폭풍은 내 머리와 내 정신 속에서만 그렇게 치고 있는데 내 몸은 노곤노곤하게 식어가고 있는 것>
    캐동감... 읽고 왠지 울컥했어요... 근데 고기양 정말 적다능! 진짜 1인분 아닌가혐?!
  • xian 2008/10/15 21:57 #

    아니요.;; 3인기준 고기였던가. 아마 그럴겁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풍족하긴 했지만 좀 적은 편이긴 했죠.
  • 올비 2008/10/15 09:01 #

    계란말이가 가장 눈에 들어와요... ;ㅂ;
    밥 먹을때 반찬은 저걸로만 먹으래도 먹겠어요 ㅠ.ㅠ
  • xian 2008/10/15 21:58 #

    쌈밥집에서 만난 계란말이 중에는 단연 최고였고, 다른 음식점 따져도 1,2위일 것 같더군요.
  • 김꿀 2008/10/16 13:22 #

    밥 점심식사를 마치고 와서 보는데도 구미가 당기는 것을 보면 어지간한 고기의, 좀 더 정확하게는 돼지고기의 노예인 모양입니다. 게다가 저 계란말이는 밥 두그릇 정도는 가볍게 해치울 수 있게 할 것 같은데요!!
  • xian 2008/10/18 12:22 #

    저런 정도의 쌈밥집이 근처에 있다면 저것만 먹고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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