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허영에 가득찬 낙관 by xian

새해 첫날. 여전한 불면증 덕에 오랜 시간을 깨어 있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리고 뭔가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은, 아니, 많이 기분나쁜 생각이다. 살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부정부패로, 패역한 위정자들의 행동으로, 그리고 썩은 정치인들의 행각으로 나라가 이 지경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정치라는 곳에 무관심할 수 있는지를.


물론 그 기저에는 정치 및 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가 들어 있고 그 뿌리깊은 혐오는 나름 타당한 이유 속에 지금까지 커져 왔다. 정치인들, 기득권자들이 조장해 온 '그 놈이 그 놈이다'라고 하는 양비론, 그리고 개혁을 하겠다고, 자신의 선의로 무언가를 바꾸어 보겠다고 그 진흙탕 속에 뛰어들었다가 자신도 짜게 식어버리고 자신도 썩어버린 부패한 이들이 내뿜는 악취, 그리고 오랜 동안 군림해온 노회한 이들의 그 군림한 세월만큼이나 깊게 찌들어버린 부정부패,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생각, 바꿔도 안 된다는 무력감 등등.

그런데 그것만으로 정치 및 사회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나 무관심이 '당연하다'라는 면죄를 받을 수 있느냐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나라에서 정치나 사회참여에 대한 뿌리깊은 혐오나 무관심만으로 자신의 권리를 내던진다면, 그 권리를 내던짐으로써 얻는 폐해는 고스란히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것은 무책임의 결과고 무원칙의 결과이며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그리고 - 설령 내가 뽑지 않은 이들이 자리를 차지했더라도 - 우리가 뽑은 대통령, 우리가 뽑은 위정자들로 인해 재벌, 건설업, 대기업, 부유층들은 돈과 권력을 쥐었고, 서민, 비정규직, 중소기업, 약자들의 삶은 피폐해져 버렸다. 그것이 지난 1년의 일이다.


그렇게 호되게 당했음에도 덜 맞았는지, 코미디같은 일은 주위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종부세, 법인세 감세가 되었다고 자신들의 세금이 줄어들 거라고 믿는 비정규직 친구, 많이도 아니고 '조금'하는 영어로 이젠 영어가 대우받으니 자기의 지위도 올라갈 거라는 무능력자의 헛소리. 대통령이 말했으니 주식을 사면 대박칠 거라고 했다가 결혼 자금을 거덜내고도 그 손해를 메꾸기 위해 물타기를 하는 예비 부부. 누가 되든 말든 그 놈이 그 놈이라 하면서 투표도 안 한 주제에 올라가는 물가를 욕할 기운은 있는 무지렁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나라를 말아먹겠냐고 그릇된 옹호를 하는 하나님을 믿는지 사탄을 믿는지 알 수 없는 종교 지도자 등등.

나는 이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이들의 근간에 깔린 생각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이 시궁창 같은 공간 속에서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허영에 가득찬 낙관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내가 지존이 되면 장땡이다'하는. 그런 마인드처럼 말이다. 지금 현실이 엿같아서 강제노동 수용소처럼, 개노가다 게임에서 레벨 업에 소요되는 단순한 반복작업처럼 희망도 뭣도 찾기 힘든 덧없는 일들을 하루하루 하고 있지만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아서 언젠가는 나도 권력과 힘을 가지겠다(지존이 되겠다). 그러면 더 이상 이런 일들은 안 해도 되고 나도 군림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정말 똥덩어리 같은 생각이라 말하고 싶다.


물론, 나라고 출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고, "나의 생존"을 다짐하는 사고방식도 사실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의 삶을 지키는 데에 있어서는 더없이 좋은 방어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긍정적 사고에 한했을 때에나 좋은 것이다. "나는"이 아니라 "나만"이 되는 순간 이기심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사회악과 타협하고, 무관심과 손을 잡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부정부패를 그냥 넘어가고,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욕하면 그건 더 이상 긍정의 힘도 긍정적 사고도 뭣도 아니다.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거는 세상을 보는 눈이 흐려져 뭐가 옳고 그른지조차 판별하지 못하는 허영덩어리 바보가 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긍정의 힘을 가장한, 사탄의 계략에 동참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런 지경까지 이르러 놓고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건 너무 우스운 이야기 아닌가?

그렇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믿는 사람들은 뭐 한둘이 아니겠지만 분명하고 냉엄한 사실 하나가 있다면, 그렇게 해서 그들이 원하는 '지도층'으로 상승하는, 그래서 서민의, 치열한 현실의 때를 벗은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런 '악마와의 계약'으로 순간의 성공을 얻는 것이 쉬워 보였다면, 이용가치가 없으면 버려지고 찢겨지는 것은 백배 천배 더 쉬운 일이다. 권력에 취해 나대다가 도박에 빠져 방송계에서 퇴출수순을 밟고 있는 누구처럼 말이지.


만일, 백번 양보해서, 그런 바람대로 당신만 살아남고, 다른 이들은 모두 작살나 버린 그런 세상이 왔다 치자.

좀 많이 건방지지만, 나는 묻고 싶다.

"주위에 당신 외에는 아무도 없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이 질문을 내 자신에게 했을 때 나의 대답은 No 였다. 인간관계도 좁고, 제멋대로고, 괴상한 생각을 하길 즐겨하고, 무엇에 미치면 다른 것 하나 안 보고 그것에만 매달리는 나지만, 그래도 그것은 나의 세계일 뿐이고 '세상'은 엄연히 다른 이들과 만들어 나가는 곳이다. 그런 세상의 일을 생각할 때, 나 외에 다른 누군가가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지옥이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기까지 읽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매도하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할 수 있느냐'라고 나에게 누군가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 역시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 바로 '양심' 혹은 '선한 뜻'이라고 하는 - 믿는 사람으로서 이런 불쾌한 생각에 전심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가능하게끔 만드는 사회적 현상들이 있고, 앞서 말한 현상들이 요 근래 내 근처에서, 대한민국에서 더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불쾌한 생각에 고개를 조금은 끄덕이게 된다. 무엇보다. 세상은 절대 나만 살아남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좋아질 만큼 간단한 곳도, 녹록한 곳도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포함한,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자신이 '주위를 돌아보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현실이 괴롭고 힘들 때에 낙관론을 가지면서 나 자신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면, 그것 자체는 긍정의 힘 자체로 작용할 수 있지만, 만일 그게 긍정의 힘을 넘어 '주위를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함과 무관심이 된다면, '나만 살겠다'는 이기심이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긍정의 힘도 아니고 낙관론도 아니며 현실과 동떨어진 허영심이 된다는 것이다.

낙관을 하되 냉정함을 남겨두고, 희망을 찾되 비수를 품어야 할 이유는. 그래서 필요하다.


- The xian -

덧글

  • LackSuiVan 2009/01/02 08:17 #

    그 빌어먹을 놈의 쥐가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 어지럽혀 놓아서 보통 황폐해진것이 아닌것 같아 슬픕니다.
  • xian 2009/01/03 20:04 #

    쥐 때문만은 아니죠.;; 사람들이 정의를 말하지 않기 때문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 알겠어요 2009/01/02 08:46 #

    맞습니다. 나만 살아남으면 되지 - 라는 건, 결국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가장 큰 함정이 될 수 있거든요.
  • xian 2009/01/03 20:04 #

    이기주의는 언제나 무서운 함정인 게죠.
  • 안셀 2009/01/02 09:05 #

    "억울하면 출세해"야 말로 사회악의 근원..
  • xian 2009/01/03 20:04 #

    리니지에서 '억울하면 성혈 들어가'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죠.;;
  • 원래그런놈 2009/01/02 09:23 #

    아 빌어먹을 정말로 나만 사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제발 뭘해도 사람으로써의 존엄을 잃지 않고 존중 받는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 아닌가?

    소위 돈있고 학식 있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집단적인데 하는 행동은 집단의 가장 큰 개체 중 하나인 사회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지극히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인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

  • xian 2009/01/03 20:14 #

    돈은 있고 학식도 있지만 인격이 없는 것이죠.
  • 레인 2009/01/02 10:34 #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생각과 비슷하시군요. 지금 우리나라엔 극에 치달은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있는것 같애요. 에휴..
  • xian 2009/01/03 20:15 #

    이기심에서 비롯된 경쟁만으로는. 답이 없습니다.
  • 리플리 2009/01/02 12:58 #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를 무슨 자랑인냥 떠벌리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좋은 글이네요. 그 사람들은 정치는 정치인만 하는 건줄 아나봐요.
  • xian 2009/01/03 20:15 #

    정치가 정치인만 하는 거라면 그 사회는 왕정이나 귀족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아니죠.
  • draco21 2009/01/03 01:41 #

    한번씩 되새겨보아야 할 이야기네요. ^^: 어느 책엔가 보니. 사탄의 언어는 단 한마디.. '오직 나만을 위하여' 라고 하던데.. 딱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 xian 2009/01/03 20:15 #

    그래서 제가 이 정부를 반 기독교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나야꼴통 2009/01/03 20:59 #

    과거 친일파 나부랭이 들이 일제시대(?) 에
    그랬져
    나라가 망하던 말던 자기 뱃속만 채우면 된다는..
    (낸중에 재산 환수 합네 마네 하고 재판까지 가게 두는걸 보면
    참 좋은 법치 국가 입니다만...)

    지금 이시대에 그 꼬라지 를 보고 있다는게 ..
    후~
  • xian 2009/01/05 00:39 #

    지금 친일파들의 후손이 어느 집단에 가장 많이 있는지만 봐도 불보듯 뻔한 이야기죠...-_-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