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먹으러 간 날, 무언가 눅눅했던 날 by xian

무료한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 밖을 나섰다. 어디 멀리 떠나면 좋으련만 기껏 생각하는 건 걸어서 명동에 가서, 걸어서 무언가를 먹겠다는 생각이었다. 곧 이사갈 집에서는 명동이 엄청 먼 거리겠지만 지금의 집에서는 먼 거리도 아니니 가보자. 하는 마음에 나갔다.

얼마 전에 포스팅했던 파파로티의 번. 맛은 여전했지만, 비 오는 날도 아닌데 무언가 눅눅했다. 번이 원래 갓 구워내는 빵이라 오래 두면 바삭한 표면이 습기를 빨아들여 눅눅해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다지 오래 놓아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뭔가 눅눅했다.
그래서 저 날은 번을 먹다가 홍차 대신 따뜻한 우유를 주문했더랬다.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서 말이지.
번을 먹고 명동 주변을 한두 시간 쯤 돌아다니다가 저녁 때가 되자 롤과 초밥을 파는 어떤 집에 들어갔다. 먼저 야채와 반우동이 나왔다.

이건 야채 샐러드. 맛은 그냥저냥. 야채도 좀 눅눅했고.
이게 반우동. 뭐 식전에 먹기는 딱 좋은 정도??
그리고 롤 + 초밥 세트.

그런데 여기에선 씹는 맛이 있어야 할 초밥용 밥이 눅눅했다.
롤 뿐만 아니라 초밥의 밥까지 눅눅했다. 하나님 맙소사.-_-;;
보기엔 형태를 잘 갖추고 있는 것 같지만 입에 넣고 씹어보면 밥알이 힘없이 뭉그러졌다. 이 사이에 눅눅하게 질어 버린 밥알이 끼는 건 그다지 좋지 않다.-_-;; 다른 밥도 아니고 초밥을 먹을 때에는 더더욱......

뭐 어쨌거나 나는 그 당시엔 '아무려면 어때'라는 생각이었으니 그냥 먹었다. 하지만 다음에 명동을 찾으면 이 집에 다시 갈 일은 없을 듯.
이렇게 사진을 꺼내 놓고 한 한달쯤 전에 있었던 일을 추억하다가 며칠 남은 이사 날짜가 떠올랐다. 비록 서울 안으로 이사를 가긴 하지만 좀 거리가 멀다. 아니, 거리가 멀고 가깝고를 떠나 며칠 뒤면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던 동네를 떠난다는 게 좀 마음이 그렇다. 그 때는 살짝 불만인 이런 음식들조차 추억으로 남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뭔가 센티멘탈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다.

불현듯. 내 입맛으로 느끼는 것보다 저 날의 음식이 더 눅눅하게 느껴진 건 음식이 아니라 남겨진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저 날 내 머리 주위를 떠돌았지만, 지금은 생각나지 않은 채 잔영만 남아 있는 그 감정은 무엇일까.


- The xian -

덧글

  • 똥사내 2009/03/22 20:28 #

    번 가끔 먹으면 맛있다는
  • xian 2009/03/24 16:33 #

    눅눅하지만 않다면 매일 먹어도 맛있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통계 위젯 (블랙)

2641
249
3056560

A타입 클린 캠페인 위젯

2011 이글루스 TOP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