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8집 ATOMOS : 아침의 눈 감상 by The xian



CD의 포장을 뜯고는 한 번 듣고, 헤드폰을 놓아 버렸다. 처음 있는 일이다. CD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헤드폰을 다시 머리에 쓸 수가 없었다. 내 손은 헤드폰으로 가고 있었지만, 내 의식이 그것을 저지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등등의 이유로 못 들어줄 노래를 한 번 듣고 헤드폰을 놓아 버린 적은 있지만, 이 노래는 - 물론 그 전의 두 번의 싱글에서 보여주던 멜로디의 의도적인 부조화 같은 게 내 성향과는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 그런 이유로 헤드폰을 놓은 게 아니다. 못 들어줄 노래는 감정이 거부한다. 그러나 '아침의 눈'을 밀쳐낸 것은 이성이다.

한나절이 지난 다음. 왜 그랬을까 하고. 거부하는 이성을 억지로 안정시키고. 눈을 감고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서 다시 한 번 '아침의 눈'을 들어 보았다.


내 안팎의 여러 힘든 일로 지속된 공허함, 우울감, 그리고 날카로워진 신경. 그리고. 점점 감각을 잃어 가고 있는, 아니, 감각을 느낄 수는 있으되 그것이 무슨 막 같은 것에 둘러싸여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

연애니 직급이니 지위니 돈이니 뭐니 하는 식의 소리에 치이고 꺾이고 홀대받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 취급, 가족이고 남이고 내 프라이버시 침해하는 일은 잊을 만 하면 계속 일어나고, 내 삶에 정작 필요한 소리가 아니라 권커니 잣커니 하는 소리는 왜 이리 많은지. 거기에 짐지워진 빚. 도저히 늘어날 기미가 없는 잔고. 세금 폭탄.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고, 그 몸보다 더 지쳐 가는 건 마음이다.

당장이라도 어디 가서 한 일년쯤 잠적하고 싶은 기분이다. 아니. 일년 가지고 될까?


............내가 그랬다.



그런 내 자신을 생각해 보니 내가 서태지의 다른 노래와는 달리 '아침의 눈'은 한 번 듣고 헤드폰을 놓아 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노래는 내가 가진 공허함, 우울감,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내 속의 어두운 부분들을 못 견딜만큼 증폭시키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정말 세밀한 부분까지 분할했다는 게 느껴지는 '음악 오타쿠' 서태지의 '소리'도 그렇지만, 노랫말에 암시된 죽음 혹은 소멸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말들도 내가 느낀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에 한몫 하고 있다. '이제 곧 사라질 아침의 눈', '첫 번째 비가 오는 날... 딱 한번 울거야', '매년 첫 번째 비가 내리는 날 나의 노란 우산을 활짝 펼쳐 이 예쁜 꽃을 네게 줄거야' 같은 말들.

어쩌면, 서태지 역시 - 나와 종류는 다르겠지만 - 그런 공허함. 우울감을 느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뫼비우스의 띠 모양의 문양이, 표지의 문양(위 사진)은 잘 정제된 모양이지만 정작 CD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마치 아무렇게나 그려진 듯한 검은 스크래치 같은 모양(아래 사진)인 것도 그런 마음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서태지라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수는 없겠지만 말이지.


나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 본다.

만일 내가 이 노래를 계속 듣는다면, '아침의 눈'은 나에게 약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Gloomy Sunday'가 어떤 이들을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으로 인도했던 것처럼, '아침의 눈'이 나를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으로 인도하게 될까...?


어떻게 될까......??


- The xian -

덧글

  • 2009/07/05 21:1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The xian 2009/07/06 02:46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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