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커먼 손으로 든 숟가락들 당장 치우시죠. by The xian

평소에는 유명한 어떤 것이나 국민적 성과를 거둔 이들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다가 막상 그들이 유명해지고, 엄청난 성과와 영예를 얻자 그에 편승하여 어떻게 좀 떠 보려고 하는, 이른바 '묻어가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런 부류들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곳은 정치권입니다.

뭐 '줄을 잘 서면 장땡이다'라는 말처럼 시류에 편승하는 것도 능력이겠습니다만, 문제는 남들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고 그 영광스런 밥상에서 찌꺼기 얻어먹는 것만으로 자기가 그 밥상의 주인인 양 행세하고자 하는 '본색'이 너무도 빤히 보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최근 여러 건 나온 것도 모자라, 시류에 편승하려는 언변과 작태가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싸구려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Episode I

아시다시피 세종시 문제로 당 내부까지 불도저로 밀어붙이려는 친이계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친박계의 입장이 충돌하며 한나라당의 내홍이 시끄러운 상태입니다. 뭐 저는 개인적으로 돌아가신 분의 말마따나 정체성만은 뚜렷한 한나라당이 이 문제 가지고 끝까지 물고 뜯고 싸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지금은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고 있지요.

그 충돌이 벌어진 의원총회 과정에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친박측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요즘 한나라당 분위기가 춥고 무섭다. 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예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까지 든다. 이대로 하면 집권이 가능하겠느냐. 집권했다고 치자. 모태범, 이상화, 김연아 선수처럼 발랄하고 자유분방한 우리의 아들, 딸들이 그런 세상을 견디겠느냐. 이러니까 우리가 딴나라당 소리를 듣는 것이다"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발언입니다. 나라를 거꾸로 돌아가는 보일러로 만들어놓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충격이지만 말이죠.

아니, 이미 초창기부터 당신들 계속 '딴나라당' 소리 듣고 있었는데 의원님 혼자만 모르셨던 겁니까?


Episode II

며칠 전,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동계올림픽 선수들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의 신세대들이 대단하다. 이승훈 선수가 1만m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오늘 뿐 아니라 아마 한 달 정도는 기분이 좋을 것이다"라는 말과, "김연아 선수가 잘 해서 꼭 금메달을 따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세계인들을 즐겁게 해줄 것으로 확신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 이후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오늘 김연아 선수와 함께 출전하는 곽민정 선수는 민주당의 딸이다. 민주정책연구원의 곽윤석 부국장의 딸인데 고1의 어린나이다. 제2의 김연아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민주당의 이름으로 성원하고 싶다"

기대를 가지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여당과의 싸움에서 매번 무능하게 깨지는 정당 이름으로 성원했다가 아이의 미래가 어찌 될지 심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Episode III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26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갑자기 뜬금없이 민주주의 이야기를 꺼내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아들과 딸들은 87년 6월 항쟁으로 만개하기 시작한 민주주의의 텃밭에서 태어나 민주정부 10년 동안 민주주의라는 산소를 마시며 성장해왔다. 이들의 선전은 곧 민주주의의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고. 그러면서 "우리의 아들 딸들이 이처럼 민주주의를 마시며 신바람을 폭발시키고 있는 동안에도 전 사회적으로 민주주의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민주주의가 생동하는 속에서 국민을 신바람나게 해야 국민은 행복해진다"라는 식으로 현 정부에 대해 비판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말이 실린 기사를 보면서, 저는 정동영 의원이 어떻게 소재를 선택해도 이런 소재를 선택했는지 참으로 골이 아픕니다. 다른 것을 가지고도 비판할 게 얼마든지 있거늘 왜 올림픽을 정치와 연계시키지 못해 안달일까요? 이런 같잖은 논리는, 한마디로 말해 쥐 잡는데 소 잡는 칼을 휘둘러대는 격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잡을 것은 못 잡고, 힘만 빠져서 헥헥대다가 제풀에 쓰러지게 되는 법이죠.

민주주의는 아무데나 갖다붙여도 되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대통령 후보까지 나섰던 분이 왜 이리 생각이 엷어지셨나......


뭐, 하지만 이 세가지 에피소드 말고 오늘 '묻어가기'로만 따지자면 가장 제대로 묻어간 것은 MBC에 친가카 성향의 고려대 동문 사장을 앉힌 일이겠죠. 오죽하면 제 지인은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이 결정된 시간에 누군가는 MBC라는 금메달을 강탈해 갔다"


지금 시커먼 손으로 숟가락 들고 퍼먹으려는 거 다 보입니다. 그 숟가락들 당장 치우시죠. 아. 이미 다 퍼드셨다고요? 예. 밥 훔쳐먹어 놓고 그 밥이 제대로 소화되는 꼴 못 봤습니다. 어디 두고 보겠습니다.


- The xian -


원문 :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쓴 글.



덧글

  • draco21 2010/02/27 00:07 #

    주어없는 누군가도 지금은 가만히 있는게 의아할 지경인데.. 갑자기 딴 사람들이 쓸때 없는 소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참.. -_-:
  • The xian 2010/02/27 00:17 #

    염불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가 있으니 이런게죠.
  • 라라 2010/02/27 00:12 #

    에피 3..

    정동영이가 1987년 6월에 뭘 했는지 알면 더 웃길듯 싶군요...

    무려 영국 유학 중에 6 29 선언 봤다나..

    끼어들기 떼쓰기 숫가락 넣기 대가가

    민주주의 운운이라니...
  • The xian 2010/02/27 00:17 #

    제가 보는 정동영씨는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할 인물입니다.

    노인폄하 논란으로 꼬투리잡혀서 한나라당에게 따라잡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자신도 큰 곤욕을 겪었으면서 이런 식으로 어이없는 갖다붙이기를 하는 거 보면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고밖에는 생각이 안 들더군요.
  • Niveus 2010/02/27 00:50 #

    솔직히 정동영이는 예전부터 저랬기에 전 선거에서 안될거야 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못차렸다기보다는 차릴 정신이 애시당초 안보였습니다(...)
  • The xian 2010/02/27 09:50 #

    어쩌면 그렇게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식언을 일삼는 걸로 봐서는요.
  • Nodoca 2010/02/27 00:52 #

    그저 더러운 속물들
  • The xian 2010/02/27 09:50 #

    속물들이죠. 예.-_-
  • 평민 2010/02/27 08:55 #

    여야가 한마음이 되는 현장.

    어휴...
  • The xian 2010/02/27 09:50 #

    명언을 남겨주셨는데 왠지 씁쓸하군요.-_-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통계 위젯 (블랙)

2939
255
3059102

A타입 클린 캠페인 위젯

2011 이글루스 TOP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