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 뉴비들의 책임 -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기 by The xian

쓰기 전에 전제하자면 사실 뉴비 운운하는 이야기는 웬만하면 안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 누구에게나 처음이던 시절은 반드시 있는 법이고 그로 인한 시행 착오도 다들 겪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처음이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그다지 잘 하는 것도 아니며 초심자 때에는 잘 한 것 거의 없었습니다.

- 처음이 아니라 해도 누구나 모를 수 있습니다.

- 같은 게임을 하는 다른 사람을 아래로 깔아본다는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 가장 중요한 것.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령 뉴비들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해도 위와 같은 생각은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제 밤에 쓴 만우절 장난으로 장비만능주의 와우저를 조롱한 블리자드라는 글에서 올드비들의 책임이 뉴비보다 더 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약간의 반론이 있더군요. 그러면 새로 업데이트된 콘텐츠에 진입하고자 하는 초심자들의 책임이 없는 것이냐 라는 식이죠.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WOW의 진입장벽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WOW는 그 하드코어한 게임성과는 달리 진입 장벽은 - 아무리 대한민국의 황금만능주의, 업적만능주의, 장비만능주의가 강력하다 해도 - 다른 하드코어 MMORPG에 비해 매우 낮은 편입니다. 아무리 WOW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한들 블리자드가 WOW에서 신규 유저와 초보 게이머들을 더 끌어오기 위해 행한 노력과 그 성과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던전 플레이에 대해서만 국한하여 써 보겠습니다.

오리지널 낙스라마스가 버려진 것에서 교훈을 얻은 블리자드는 불타는 성전 때에는 3차례에 걸쳐 휘장 아이템을 내놓는 방식으로, 그리고 리치 왕의 분노 때에는 아이템 창고인 아카본 석실과 함께(물론 대다수 게이머들에게는 자신의 클래스와 맞는 아이템이 미구현되는(?) 사태가 생기긴 하지만) 5인 던전 등에서 얻는 문장을 점차 상향하며 용사의 시험장이나 얼음왕관 성채 3개 던전 등의 더 난이도 있는 5인 던전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게이머들의 진입 장벽을 낮췄습니다. 거기에 더해 무작위 던전 시스템으로 추가 문장을 지급하고 공격대 던전 퀘스트로도 주마다 문장을 주지요. 이제는 영웅 던전만 죽어라 돌아도 십자군의 시험장 졸업급 혹은 그 이상의 아이템이 갖춰집니다. 서리의 문장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십자군의 시험장 난이도가 25인 하드 아눕아락만 제외하고 매우 캐주얼한 것도 신규유저를 끌어올리려는 블리자드의 묘수입니다. 제가 누차 말하는 것이지만 울두아르가 십자군의 시험장 뒤에 나왔어야 한다는 분들이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데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 것입니다. 거대한 울두아르 뒤에 더 거대한 얼음왕관 성채가 또 나오면 게이머들이 과연 제대로 살아남을까요?

뭐 저도 나름 코어한 사람이라 순서가 바뀌든 말든 저는 언젠간 리치 왕을 잡았을 것입니다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되었다면 지금처럼 얼음왕관 막공이 활성화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십자군, 얼음왕관 성채 아이템 둘둘 입고 와도 공략 모르면 부지기수로 전멸하고 헥헥거리는 울두아르 25인 하드모드가, 십자군의 시험장 25인 하드모드 수준의 데미지를 줄 정도로 더 강력한 난이도로 나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울두아르에서 다 나가떨어지는 상황인데 어떻게 얼음왕관 성채까지 가겠습니까. 거기에 지금처럼 아눕아락을 제외한 십자군 25인 하드모드가 얼음왕관 성채 대비 아이템창고가 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WOW는 게임성에 비해 상당히 라이트합니다.(주의 : '게임성에 비해' 라이트하다는 것이지 쉬운 게임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게임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WOW에 진입하는 것은 다소 힘들 수도 있습니다.) 갓 만레벨 달고 십자군 25인 손님으로 가도 되니까요. 저도 서브 캐릭터들 중 다수는 그랬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라이트하다고 해서 갖출 수 있는 것을 갖추지 않고 와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최상위 콘텐츠가 아닌 일반적인 게임 진행을 위해서라도 자기 직업에 대한 숙련을 쌓고 행동거지에 조심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어떤 게임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른다고 무조건 채팅창에 의존하지 말고 최소한 자기가 이것저것 눌러보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합니다. WOW는 닥치고 동물만 잡으면 되는 게임이 아니니까요.

특성 잘못 찍었다고 비싼 초기화 아이템을 사야 하는 게임이면 또 모르지만 돈 몇 푼 내면 언제든지 특성 초기화가 되는 WOW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저것 찍어 보고, 그러다가 최적의 트리를 배우게 되고, 어떤 기술을 조합해 보기도 하고...... 아무리 친구초대니 뭐니 해서 만레벨을 빨리 찍는다 한들 만레벨 찍는 기간 동안에 최소한 자기가 키보드와 마우스로 조작을 했다면 얼치기라도 알 수는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1주일이든 2주일이든 한 달이든 1레벨부터 만레벨까지 갈 동안 자기 기술에 대해 점검을 하고 실험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다는 것이죠.

만레벨이 되어 레이드든 5인 던전이든 가게 되면 적어도 처음 갔을 때에는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미리 남겨 놓은 것쯤은 읽어 봐야 합니다. 미리 연구한 이들에 의해 특성이 있고 공략이 있으며 딜링 사이클 혹은 힐링 기술이 있습니다. 문양의 짜임새도 클래스마다 다 나와 있습니다. 자기가 검색을 하고 찾으려는 의지만 있다면요.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 채 무조건 채팅창의 도움만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스스로 먼저 배우고 도우려고 해야 다른 사람도 가르쳐 주고 도와주는 것이니까요. 돈이요? 귀찮아 하지 마시고 퀘스트만 해도 잘~ 벌립니다. 10개만 해도 100골드는 넘게 버니까요. 100골드가 작다고 하시는데 한달이면 얼추 빠른새 배울 골드가 쌓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 적어도 최상위 난이도 혹은 난이도에 관계 없이 하드 모드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즐기려면 그만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낮은 콘텐츠를 즐기려면 또 그만한 준비가 되어야 하고요. 지금은 지못미가 되어 버린 일리단이 괜히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죠. 아이템 수준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공략을 모른다 해도 최소한 읽어 보고 오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그 초입에 진입하기까지가 넘사벽의 수준이냐 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년여 혹은 몇 년에 걸쳐 쌓아온 장비 수준을 한달여 혹은 그 이하에 따라올 수 있도록 블리자드는 시스템을 만들어 놨으니까요.

'그런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당연한 말을 굳이 강조해야 할까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글에서처럼 기어스코어, 업적, 골드만 맹신하고 만능으로 아는 무리들이 게임의 분위기를 해치는 것처럼, 그런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누가 좀 자기를 리치 왕까지 잡아 주기를 바라는 초심자들의 '지나친 의존'에 기인한 도둑놈 심보 역시 게임의 분위기를 해치게 되고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진입 장벽을 높이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초심자들의 원칙은 '기존 유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기사로서 리치 왕도 잡고 업적도 좀 되어서 서버 내에서 웬만큼 이름이 알려질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 있다고 치죠.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서브 캐릭터로 갓 만레벨 단 마법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마법사도 바로 얼음왕관 성채에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한마디로 '민폐'가 됩니다.

예. 제가 그랬습니다. 사실 얼음왕관 성채는 아니었고 십자군 시험장을 전후해서 마법사로는 좀 쉬다가 아이템 좀 먹을까 해서 공격대를 갔을 때 그랬죠. 나름 아이템도 맞추고 했고 전혀 플레이를 안 한 것도 아니었는데 웬걸, 탱커 위에서 딜이 노는 겁니다. 마법사에 대해 그 동안 숙련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어이없게도 공략도 안 읽고 갔다가 몇 번 죽어 민폐가 되었죠. 그래서 허수아비도 때려보고 커뮤니티 가서 다른 마법사들 글도 읽고 해서 한 한달여 배우니 그나마 좀 낫더군요.

상황은 제 메인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신성기사로는 그럭저럭 쓸만 한 편이지만, 징벌기사로는 장비 낭비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제 주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숙련을 안 쌓아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잘 하는 행복하신 능력의 소유자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 같은 사람들은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아무리 날고 기든 말이죠.

분명히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뭘 잘 모르겠다고 덮어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해서 민폐를 끼치지 말고 자기가 우선 찾아보고, 바로 서려고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며 거기에 더하자면 캐릭터와 해당 직업의 경험이 부족할 경우 초심자의 자세로 배우고 익히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은 신규 유저, 기존 유저 할 것 없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WOW를 하면서, 아니, 게임 생활을 영위하면서 제가 경계하는 것은 앞선 글에서 말한 것처럼 '만능'과 '맹신'이고,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경계하는 것은 '지나친 의존'입니다.


- The xian -


P.S. 핑백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기분나쁘면 그런 몰상식한 부탁을 하는 지인들에게 욕을 하시거나 적당히 떨궈내십시오. 그리고 적어도 저는 핑백하신 분의 지인처럼 주위에 그따위 민폐를 끼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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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0/04/05 11:4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The xian 2010/04/05 11:52 #

    확실히 다른 게임을 안 해 본 사람이 WOW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WOW는 상당히 어렵고, 코어한 게임이며 초고수와 일반인의 갭이 분명히 있는 게임이죠. 다만 '그런 게임성에 비해' 라이트한 것일 뿐입니다.

    자기가 흥미를 느끼거나 재미를 느끼기 전까지 찾아보려 하지 않는 것이 사실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저도 다른 게임 가면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런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결국 모든 게임이 재미없어지는 날이 오기 때문에 저는 그런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합니다.
  • madamlily 2010/04/05 23:49 #

    OB와 NB 사이의 간극은 뭐, 이젠 더 이상 메우기 힘든 게 되지 않았나 싶은데... 게다가 요즘은 대부분 던전 쪽으로 분위기가 조성되다 보니, 저나 제 여자친구님처럼 퀘스트 몰입형인 사람들은 점점 더 게임에 지쳐가게 되는 듯 해요. 던전에 몰입하시는 분들이라고 딱히 더 나은 상황은 아니지 않나 싶고...
    이래저래 답은, 하루 빨리 대격변이 시작되는 것 뿐이지 않은가 싶네요. =ㅅ=;
  • The xian 2010/04/06 10:13 #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대격변도 그렇게 근본적인 해답은 못 될 듯 합니다. 맹신과 만능에 찌들어 고착화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가능성은 없다고 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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