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에 침묵하는 KeSPA와 게임단이 제정신인지 의문이다. by The xian

승부조작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지 한 달이 지났고, 그래서 e스포츠 존립위기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과연 KeSPA와 게임단, 방송에서 거의 한 달 동안 한 행동이 무엇일까? 해답은 다섯 글자. '사실상 침묵'이다. 물론 완전한 침묵은 아니다. 특정 선수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완전히 침묵할 수는 없는 것이지.

아무리 검찰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도, 악성 루머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게임단측의 발표 한 번, 몇몇 선수 혹은 방송사 중계진의 간접적이고 일시적인 언급. 그리고 뒷담화 한 번과 지속적으로 틀어주고 있는, '열정'을 강조하는 방송사들의 광고. 그 외에는 신기하리만치 아무 것도 없다. 신문기사 역시 승부조작건이 터진 이후에는 왁 하고 기사가 나왔지만 그 뒤를 너무도 빨리 덮어버린 게 임요환-김가연 열애기사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정말이지 웃기는 노릇이지. 연예기사가 왜 e스포츠면을 덮고 지랄인데?

비슷한 사례의 부정이 발각된 쇼트트랙의 예를 봐도 - 물론 아기 강아지 같은 빙상연맹의 징계 결과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 담합 등의 논란이 생기자 연맹차원의 소환조사, 진상조사 등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선수측, 협회측, 코칭스태프 등등의 여러 주체에서 저마다의 입장을 표명하며 여러 모로 문제가 바쁘게 돌아갔고 그 이후에 상벌위원회가 개최되었지. 그것에 비하면 협회 차원의 입장표명이나 사과와 같은, 공식적인 뭣조차도 없는 e스포츠 승부조작건은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최근 모 게임단 홈페이지에서 이번 사안에 연루되었다고 거론된 선수들 중 가장 거물급으로 평가되는 선수의 사진이 메인화면에서 삭제되고, 프로필 역시 삭제되었다. 그리고 승부조작건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전에는 의심 가는 선수들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묻혔다. 물론 그런 식으로 문제에 대해 드러난 누군가만 시범케이스로 조용히 덮으면 당신들이야 안도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런 식의 온정주의로 이번 사건을 어물쩡 무마하려고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닌 것이고, 이번 일을 그저 정에 이끌렸다느니, 잘 몰랐다느니 하고 말하는 것도 제정신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정이니, 몰랐다느니, 처지가 곤궁하다느니 하는 건 문제의 동기는 될지언정 이번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기사로 보도된 것만 봐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이 절대 단순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들이 얽혀 있냐면,

a) 승부조작 행위 (져주기 등으로 게임 승패에 직접적 영향을 미침)
b) 리플레이 등의 전략사항 유출행위 (비밀유지 서약 위반)
c) a), b)를 매개로 한 대가성 금전 거래 (뇌물수수 및 공여)
d) 불법 베팅 사이트 운영 및 승부조작 개입 (도박죄 및 사기도박죄)


이런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범죄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명색이 e스포츠 협회고, 게임단을 운영하는 주체들이 승부조작이라는 부정행위, 리플레이 유출 등의 스파이 행위, 뇌물, 도박이 컴비네이션으로 어우러진 중대한 범죄행위에 대해 이토록 소극적인 것도 어이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협회, 정상적인 스포츠,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되는 행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주야장천 때려대는 광고에서 임이최 팔아먹으며 팬들 들먹이며 '열정'만 운운하는 상황이라면 협회, 게임단, 방송사 측에서 e스포츠를 스포츠로 운영할 생각이 과연 있는지 없는지 의심되는 일이기도 하고.

분명한 건 지금 이따위로 포털 e스포츠 섹션 메인에 열며칠째 올라있는 임요환-김가연 열애가 중요한 게 아니다. e스포츠 팬들의 애정이 식고 있다. 애정이 식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KeSPA와 게임단들의 침묵 때문이다. 팬들의 애정을 돌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e스포츠가 스포츠로서의 공신력을 갖추고 싶다면, 입막음용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이 문제를 숨김 없이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는 사안의 경중을 떠나 제 살을 도려낸다는 심정으로 모두 e스포츠 계에서 추방해야 한다. 형사처벌은 그 뒤의 문제고.

만일 연루된 선수 및 관계자들의 명단공개가 없거나, 있다 해도 몇명만 은퇴, 제명시키고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방식이 된다면 e스포츠는 스포츠로 인식되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니,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스포츠로 인식되느냐 아니냐의 차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볼거리'로서의 가치도 없는, 조악한 광고보다도 못한 전파낭비와 시청자들을 향한 쓰레기 투척행위가 되는 것이고, 이 일로 밥을 먹고 살아 온 관계자들을 '너희는 그 동안 뻘짓한 거야'라고 조롱하는 행동밖에 되지 않는다.

자기의 무언가를 걸 생각도 없는 주제에 입으로만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떠벌일 게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걸고, 입을 열고, 밝혀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 KeSPA와 게임단들이 지금 제정신이라면 말이다.


- The xian -


덧글

  • 다니다니아니 2010/05/15 12:16 #

    보면 시안씨는 정말로 e sports 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해서 잘못된점을 지적하시는걸 보면요. 다들 제정신 차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쉬운길로 가는게 사람들 속성 OTL
  • The xian 2010/05/15 17:26 #

    애정보다는 애증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막장가도를 달리면 참 화가 나거든요.
    그런데 제 직업과도 관련이 있는 판이라 애정을 안 가질 수도 없고요.
  • 無名공대생 2010/05/15 13:22 #

    요새 그래서인지 스타1에 대한 관심은 좀 죽었습니다.
    스타2를 오히려 더 보고 있죠.
    물론 스타1에 비해서 미숙한 면모가 많이 보이고 있지만.
    보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하더군요.
  • The xian 2010/05/15 17:26 #

    저는 직업상 스타2를 요즘 거의 못 하고 있어서 보고 있진 않습니다.
    정식버전이 나오면서부터 좀 더 많이 해보려고 생각중이고요.

    어찌될지 지금은 두고보는 중입니다.
  • draco21 2010/05/15 14:00 #

    결국 암말 안하고 묻어가는군요. ... 반 농담입니다만. '주최'측이 이러면 어떻해야 하는겁니까. ^^: 설마 이것이 그 유명한 '주최측의 농간!'
  • The xian 2010/05/15 17:28 #

    상황이 돌아가는 것으로 봐서는 조만간 뭔가 기사는 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 있는 선수 몇 명 정도만 드러나게 만들고 나머지는 그냥 조용히 묻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죠.

    괜히 C구단에서 M선수 이미지를 메인과 선수상세소개에서 삭제했을까요...
  • 자유로운 2010/05/15 15:49 #

    블리자드가 빨리 판을 뒤엎어 버리는게 오히려 나을거 같습니다. 돈독 오른 사람들이 위에 있으니 참 잘도 돌아가는군요. 돈도 좋지만 판에 대한 애정과 제대로 된 이해가 있어야 되는데, 이건 뭐 답이 없지요.
  • The xian 2010/05/15 17:29 #

    뭐 저는 블리자드가 한다 해도 어차피 돈독 오른 사람도 있고 이권다툼도 있을 거라 보지만, 지금의 협회가 제대로 이 판을 키울 생각이 없다는 '오해'가 계속 드는 건 참 끔찍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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