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업자득의 결과. 그리고 이번 주 그들의 선택은? by The xian

KeSPA를 위시한 기존 기득권 세력들의 모습은 지난 주말 동안 아주 엄청나게 우스워져버렸다. 이윤열 선수의 전향까지는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었겠지만, 아니, 커버할 수 있다고 인지부조화로 넘어갈 만한 수준의 치명타를 입었지만. 그래서 감히 역대 최고의 기록을 가진 선수를 상금사냥꾼이니 규정 숙지가 안됐다느니 하는 식으로 능욕하는 멍청한 행동을 저질렀지만. 임요환 선수의 전향은 치명타 그 이상이다.

비록 오랜 동안 리그 출전을 하지 못했기에 임요환 선수가 '지금 벌어지는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경기'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했을지 모르지만, e스포츠의 창조자 중 한 명이자 아이콘으로서 그가 가진 위상의 상징성과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도는 지금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에서 현존 최강인 선수들이 도리어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다.


임요환 선수는 떠나면서 못을 박았다. '스타크래프트1을 그만두고 스타크래프트2를 시작하는 것이지, 프로게이머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라고. 그런 황제의 칙령(勅令)의 무게는 자신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반왕 세력'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이제 그들이 임요환 선수에게 어떤 대접을 하든 그들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어떤 선택을 하든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만일 그들이 이윤열 선수에게 했던 것처럼 아주 재빠르게 은퇴처리 및 기록을 숨기고, '상금 사냥꾼'이니 '규정을 미숙지한 선수'니 등등의 소리를 하면 황제를 욕보인 이들은 백배 천배 앙갚음을 당할 것이 분명하고, 이윤열 선수에게 했던 것처럼 하지 않고 어물쩡거리고 있거나 슬금슬금 거기에 묻어가려 한다면 그들의 이중잣대로 인해 KeSPA의 권위는 - 사실 언제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 비웃음 속에 밟히고 깎여진 잔해들마저 날아가 버릴 것이다.


얄궂은 것은, 전성기가 지나고 전역 이후 돌아와 안타깝게도 개인리그 예선을 한 번도 뚫지 못했던 임요환 선수에게 그런 권위를 오래도록 부여해 온 것은 바로 KeSPA와 게임 전문 방송사, 그리고 수많은 매체들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들의 이익에 의해 그런 선택을 자의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개인리그에서 정상권에 이르지 못하게 된 뒤에도 황제 운운하며 전역 때까지 줄창 우려먹고 팔아먹은 것도 모자라, 임요환 선수가 전역 후 기자화견을 가져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이 판을 위해서는 있는 임요환을 활용하기보다 새로운 임요환을 키우는 것이 좋다'라는 발언을 했음에도 그들의 '임요환 우려먹기'는 계속되었다.

프로리그에 자주 얼굴을 비치지 못해 선수의 동기부여에 혼란이 오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상황임에도 그들은 무슨 행사만 있다하면 임요환 선수를 얼굴마담이나 방패막이로 세웠다. 최근의 승부조작 사태까지 여러 현안 속에서 날고 기는 현역 선수들 다 제쳐두고 임요환 선수를 e스포츠 대표 아이콘으로 팔아먹는 행동을 저지른 것 역시 바로 그들이다.

아무리 임요환 선수의 또다른 위치 - 선수이면서 창조자였던 - 를 감안한다 해도 특정 인물을 스타로, 아이콘으로 만드는 전략을 너무 오래 끌었다. 물론 이런 전략이, 스타크래프트 리그 초기에 이미 성립된 팬덤에 기대 단시간에 e스포츠가 높은 인지도를 가지는 데에는 적합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쉽게 얻은 인지도에 도취되어 '새로운 임요환, 새로운 이윤열, 새로운 홍진호'를 만들어야 했을 부분에까지 '있는 임요환, 있는 이윤열, 있는 홍진호' 등등을 우려먹는 행동은 결국 새로운 아이콘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악영향을 낳았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하도 임요환 선수를 팔아먹던 그들이었기에 이번 공청회에서 임요환 선수가 아닌 이제동 선수가 희생양(!)으로 끌려나온 것이 생경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다시금 강조하지만 지금 스타크래프트의 저작권 가지고, 임요환의 스타크래프트2 전향 가지고 이 판이 들썩거리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KeSPA와 협상에 미적대는 방송사의 책임이다.

다른 e스포츠는 시청률이 안나온다거나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내팽개친 반면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는 사골이 진토될 정도로 우려내 시청률, 높은 광고노출, 이미 있는 팬들의 관심만을 이익을 위해 쪽쪽 빨아먹은 캐쉬카우 그 자체로 만들어버렸다. 반면 다른 게임들은 애초에 프라임 타임에서 경쟁할 만한 기회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결국 스타크래프트는 게임방송 프로그램의 60% 이상을 장악했다.

굳이 '쉴드'를 쳐주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런 상황이니 게임도 모르고 그런 사정도 모르는 높으신 양반들은 한심한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게임도 모르고,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니 e스포츠를 축구와 비교하는 기본적인 잘못을 범하는 것도 모자라(거기에 엄연히 중계권이 존재하는 축구의 현실을 무시하기까지 했으니 할 말이 없다) 높으신 양반들은 '블리자드에게 휘둘려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10년간 문제없이 해왔다' 따위의 시대착오적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찌되었건, 1차 저작권도 해결하지 못해 이 판의 존립에 위기가 다가오도록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스타크래프트2를 배척하고 전향한 선수들의 프로게이머 자격을 박탈해 버린 것도 모자라 상금사냥꾼이니 규정 미숙지니 하며 인신공격을 당하게 만든 주제에, 2차 저작권이니 선수의 권익이니 공공성이니 하는 것들을 논한 며칠 전의 공청회는 한 편의 코메디이자 블리자드와 저작권과 팬들에 대한 인민재판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젠 그들에게 도저히 신용이 가지 않는다. 그들이 블리자드와 제대로 협상을 하고 자신들의 사익에 의해 다른 게임을 배척하지 않았다면 스타크래프트1이냐 2냐를 놓고 고민하는 이들이 KeSPA의 프로게이머 자격을 버릴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이 좀 더 스포츠답게 '새로운 임요환'에 해당하는 새로운 상징을 제대로 키웠다면 지금 '있는 임요환'의 전향은 추억의 올드게이머의 컴백 그 이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장은 했을지 몰라도 진화와 다변화를 게을리해 오고 남의 것까지 자기 것으로 알고 집어삼킨 게으른 공룡과 같은 그들에게는 스타크래프트의 저작권도, 임요환 선수의 전향도 치명상이었다. 그리고 이젠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어떤 각도에서 봐도 자업자득이고 어떤 부분을 봐도 자업자득이다. 격변은 막을 수 없고. 그 격변이 종료되면 어떤 이들에게는 청춘을 바쳤던 터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화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젊음을 발산했던 추억의 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공공의 의무를 저버리고 사익만을 좇아 타락한 끝에 몰락이 결국 눈 앞에까지 다가온 그들이 과연 무슨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줄지, 그것이 문제다. 잘못을 인정하고 저작권을 저작권답게 논의하고 그들이 배척하고 내쫓은 프로게이머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이제라도 그들의 권익을 진심으로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황제와 살아있는 전설과 투신을 위시한 e스포츠의 개척자들에게 반기를 들고 남아 있는 선수들의 목줄을 쥐고 토요일에 불법리그를 열 것인가.


두고 볼 수밖에.


- The xian -

덧글

  • Hwoarang 2010/10/11 00:58 #

    말씀하신대로 오늘 경기 내내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피지알에서 문자 중계를 보았는데요. 중간중간 중계를 보는 동안 버벅거릴 정도였으며 모두 합쳐 십만건의 조회수가 나타나더라고요.^^ 그분의 영전으로 말미암아 케스파가 많이 힘들어진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분명히...
  • The xian 2010/10/12 17:03 #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 리사 2010/10/11 01:02 #

    오랫동안 써먹히셨지요. 가장 최근의 사건은 예의 승부조작을 덮기위해 한몸 희생하신 임논개...ㅠㅠ
  • The xian 2010/10/12 17:03 #

    저는 어떤 언론에서는 열애설은 기자들이 승낙도 얻지 않고 기사화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그게 사실이라면 참 씁쓸한 일이죠.
  • NovaStorm 2010/10/11 01:06 #

    .. 뭐 올게 왔다.. 시대에 흐름에 도태된 바보들을 멸하러 왔다.. 그정도로 밖에 안느껴지네요..
  • The xian 2010/10/12 17:04 #

    도태되는 것이야 시간의 흐름이겠지만.

    왜 시계바늘을 앞으로 돌리는지 모르겠습니다.
  • 대도서관 2010/10/11 01:22 #

    다른 선수였다면 모를까, 임요환의 스타2 전향은 정말 '칙령'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사실상 스타가 이렇게까지 뜨게 만든 기둥이니까요.

    이제 콩만 전역하고 전향하면...!
  • The xian 2010/10/12 17:04 #

    그러게 말입니다.
  • crowley 2010/10/11 01:38 #

    여러 곳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만은
    전 약간 부정적인 면도 봤습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스타 보는 사람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거?
    지금의 10대들에게 어떻게 하면 이걸 홍보 시킬 수 있을지가 궁금하네요
  • The xian 2010/10/12 17:06 #

    글쎄요. e스포츠는 어차피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단 새로운 게임이라는 점만 해도 반쯤은 먹어들어가겠죠. 아직 굳이 무슨 스토리를 만들 필요도 없고요. 오픈대회이기도 하고 내년에 코드제가 정착되면 그들만의 스토리는 만들어질 것이고, 문제는 앞으로 대회 지속 의지가 제대로 있느냐, 없느냐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KeSPA가 그리 한 것처럼 '있는 임요환'을 필요 이상으로 우려먹으려고 그래텍이 생각한다면 그건 한심한 짓이 되겠죠.
  • 실타래 2010/10/11 01:41 #

    배부르고 등따뜻하다고 누워자다보면
    토끼처럼 거북이한테 지고 마는것이

    정말 진리인가요!!!
  • The xian 2010/10/12 17:55 #

    진리입니다.
  • 000o 2010/10/11 10:00 #

    최종병기가 경기를 잘하더라도, 역시 영향력은 황제가 짱이네요.
  • The xian 2010/10/12 17:56 #

    본문에 지적했듯이 그건 협회나 방송사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e스포츠가 아무리 역사가 일천해도 벌써 10년의 역사인데.
    새 챔피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빨리빨리 넘어가는 일반 스포츠처럼 했다면
    임요환의 영향력이 이 정도까지는 있지 않았겠지요.
  • Niveus 2010/10/11 11:50 #

    흐흑 이제 콩만 나온다면!!! (...)
  • The xian 2010/10/12 17:56 #

    일단 그분은 제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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