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의 오발탄 by The xian

군 당국에서 새로 실행하는 자율 안보체험 이야기가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보체험 이야기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바로 예비군 훈련장을 개방해 실탄사격을 하겠다는 이야기이지요. 저는 군(軍)이 운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발표를 여러 가지 의미로 영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실탄을 비롯한 군용물 및 군 시설의 통제를 민간단체에게 맡기는 발상이 참 어이없다고 봅니다. 일부 기사에서 말하는 군용 실탄의 절도위험이나 부정, 비리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군이 통제권을 아예 내주는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실탄이나 장비, 시설 등을 민간에 개방한다 해도 그것의 통제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민간단체가 아니라 군이어야 합니다.

물론 군에서는 엄격한 조건에 따라 위탁업체를 선정하고 철저한 대책을 수립하며 실탄사격도 민간단체 교관의 엄격한 통제에 따라 실시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그것이 얼마나 믿음을 줄지 의문입니다. 민간보다 훨씬 통제수위가 높은 군에서조차 잊을만 하면 총기사고가 발생해 군내외의 사고사례를 장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단체의 통제가 군보다 엄격하리라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까놓고 말해. 군필자들이라면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사격장에서는 총가지고 뻘짓하면 군화발로 일단 까버려도 됩니다. 구타를 해서라도 총기사고는 막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비슷한 상황의 대상자를 돈내고 체험하러 온 사람과 민간단체 직원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이건 모르긴 해도 고객과 서비스 직원의 상황이라 이야기가 참 묘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민간단체를 내세우는 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국가나 공적 단체에서 수립한 잘못된 사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핑계거리가 되기 매우 쉽지요.

어떤 기사에 의하면 국방부 관계자가 위탁 민간단체로 '안보관련 단체'들을 언급했다고 하는데. 저는 국방부 관계자가 말하는 안보관련 단체들이 혹시나 잊을 만 하면 거리에 나와 군복 코스프레를 하고 행패부리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런 무뢰배들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실탄이 판매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더불어 군 관계자라는 자가 실탄 사격에 대한 개념을 어설프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좀 뜨악한 일이었습니다. 국방부의 동원기획관이라는 사람이 뉴스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고등학생 정도 되면 충분히 사격을 하고 통제를 해도 순응할 수 있는 그런 연령이 되지 않겠냐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한 영상을 실제로 보고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니, 지금 무슨 BB탄총 사격합니까??

물론 실탄 사격 자체는 법적으로 14세 이상부터도 가능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다루는 데에는 기본적인 지식과 훈련, 안전대책, 그리고 최소한의 건강한 심신상태가 필요하지요. 신병 때든 사격 전이든 정말 피나고 알배기고 이갈리게 PRI 받았던 사람들조차 고의가 아니더라도 총기사고 오발사고 일으켜 사고사례에 실리는 것이 소총이라는 인명살상용 무기의 위험성입니다. (실제로, 사격장에서 격발시에 총알 한방 터지는 사고 정도는 사고사례에 실릴 것 없이 징계 정도로 끝나죠.)

어쨌거나 전문적 훈련도 전혀 받지 못한 군대 밖의 사람들에게까지 군용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군대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더욱 주의깊게 보살펴도 모자랄까 말까입니다. 그런데 고작 연령만을 가지고 사격 가능하다고 정의를 내리는 것은 군 관계자로서 정말 어설픈 생각입니다. 지금이 막대기를 들고 설 힘만 있다면 모두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전시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BB탄을 사용하는 총기조차 기준에 따라 연령대가 나뉘어 성인밖에 구매할 수 없는 총기가 있는 현실을 도외시하고 실탄을 사용하는 흉기를 고등학생도 충분히 사용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군 당국의 인식은 군기가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오해가 듭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들을 합친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로 작용할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발표시기가 너무나도 나빴다는 것이죠. 아마 군 당국은 해병대를 엄청나게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필 해병대 총기난사 사고 등의 중대 사건사고가 일어난 날 이런 계획이 발표되고 기사화가 될 게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작전을 벌일 때 최적의 타이밍을 잡아 작전을 수행하고, 포를 쏠 때도 제대로 조준을 해 초탄명중시켜야 하는 게 군대인데. 군 당국은 이번에 아주 귀신같이 최악의 타이밍을 잡았습니다.

이번 발표가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상상해 보면 전방에서 포사격 하다가 민가에 오발탄 떨어져서 밭이나 집이 날아간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그리고 덧붙이면 그 포탄 떨어진 민가 앞에서 보온병 들고 이게 포탄이라고 설치는 행동이나 폭탄주 드립 치는 행동과도 비슷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어제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이 문제로 인해 제정신이냐는 질책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다지 옹호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군용물을 가지고 책임지지 못할 행동을 하려 했고 없어도 되는 위험요소를 일부러 만들려고 했으니 욕먹을 만한 짓인데 왜 그걸 옹호해 줘야 할까요? 도저히 옹호해야 할 구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끝으로 이 글의 주제와는 큰 상관 없는 일이지만 총기사고로 희생된 해병대 장병들의 명복을 빕니다.


- The xian -

덧글

  • 사랑은빠바박 2011/07/05 17:52 #

    만약에 병영체험시에 민간인이 피탄 당하는 사태가 발생 되면 당연히 백지화 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선 다행이라고 봅니다만 웃긴건 그 때 책임 지는 건 군당국과 해당민간업체겠지요. 아 뭐, 두 단체가 책임지는 건 당연하겠지만 병영체험을 주장했던 우익 단체들은 책임이고 나발이고 정말 연기처럼 사아아악 하고 사라지겠지요. 물론 나중에 중도나 진보 성향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같은 인물들이 단체 이름을 바꾼 채 군복 코스프레나 가스통 등에 메고 나타날 거라 확신합니다.
  • The xian 2011/07/06 22:35 #

    참. 그런 빤히 보이는 상황을 위해 굳이 사고사례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답답한 일입니다.
  • J H Lee 2011/07/05 18:05 #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민간단체가 담당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뭐, 한국하고는 분위기가 다르지만, 미국에서는 사격을 일종의 레저와 비슷하게 취급하고 있죠. 그리고 레저의 일환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격 훈련이라거나 하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물론 이건 미국 얘기고 한국의 실탄사격장의 교관이 그만한 노하우가 있느냐 하는 것은 다른 얘기겠습니다만..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레저 교관이라면 민간 단체가 더 낫다고 봅니다.


    하지만 기사에 언급된 것은 안보 관련 민간단체.. 안보 관련 민간단체에게 그런 노하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 The xian 2011/07/06 22:34 #

    그들에게 있는 노하우는 코스프레 정도겠지요.
  • 쌔금팔이 2011/07/05 18:13 #

    상황실에 있는 탄통을 술취한 장병 한명에게 탈취당할 정도로 일선 지휘부의 관리 소홀이 밝혀진 마당에 어떤 부분에서 안전성을 신뢰해야 하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 The xian 2011/07/06 22:34 #

    제 말이 그 말입니다.
  • 2011/07/05 18:4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The xian 2011/07/06 22:34 #

    1. 홍위병들을 세우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2. 그런 건 전통이라는 말보다는 인습이라는 말이 어울릴듯 합니다.
  • shaind 2011/07/05 19:00 #

    제 생각에 통제문제는 실제 실탄사격장에서 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할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애초에 고등학생은 좀 심각하게 무리죠 -_- 책임능력이 없는데.
  • The xian 2011/07/06 22:33 #

    그렇습니다. 책임능력이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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