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이 바닥에 존경할 인물은 없고 꼰대만 남는 건가 by The x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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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꽤 열받았습니다. 뭐 지금도 열은 받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바닥은 소위 말해 좋아서 일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업계에서 소위 높으신 작자들의 꼰대질보다. 같은 업계에서 밥 먹고 사는 작자들의 열정페이 및 꼰대질이 더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공감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완전히 등 뒤에서 칼로 찌르는 격이니까요. 더군다나 저 분들은 - 물론 임금체불 해서 까임거리 되는 분도 있는 듯 하지만 - 한때 많은 업계인의 롤모델 혹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칭송받고 지금도 상당 부분은 그런 소리를 듣는 분들이죠. 그런데 저런 분들이 저런 소리를 해대시니 열받고 실망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지요.

뭐. 저도 11년 이상이나 이 바닥에 굴러먹어보니 게임산업이 리스크도 크고 불안정한 건 인정합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올까말까 하니 야근은 물론이고 집에 못들어갈 정도로 허덕이며 일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것도 사실이지요.(그리고 저는 야근수당이란 걸 구경도 못 해봤습니다.) 뭐 그래서 보통의 마음가짐으로는 안 되니 열정 있어야 하고 안정적이지 못하니 불이익도 어느 정도 감수할 필요도 있다 치는데. 문제는. 업계의 현실이 이렇다 하면 업계에서 어느 정도 고생해 본 분들이 그걸 개선시켜 나가고 잘못이란 인식을 가지며 공감대를 형성해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열받음을 조금 곱씹고 나서 생각해 보니 다른 의미로 실망스럽더군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명색이 CEO 씩이나 되는 분들이 공개적인 대담 자리에서 '정시 출근해서 정시 퇴근 하면서 그렇게 제품을 만드는 법은 아직 인류가 발견하지 못했다'라거나, 대놓고 야근 수당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좋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게 보상이라는 식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저 분들이 '1세대 개발자로서 딴소리를 해서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게임회사 CEO쯤 되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헛소리를 해서 실망스러운' 상태입니다. 열정 운운한 것도 자질을 의심케 하는 거지만. 야근수당 같은 경우는 아예 스스로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정말 무서운 소리죠. 과연 자신이 한 회사의 CEO라는 인식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입니다만. 미국 EA CEO가 공식석상에서 우리회사 야근수당 안 준다는 식으로 말했으면 과연 미국의 매스컴이 가만 있었겠나 싶습니다. 이건 뭐 '나는 지금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습니다'라고 불특정 다수에게 매스컴을 통해 공표한 셈인데 그 좋은 먹잇감을 가만 놔두겠어요? 아마 우리나라보다 더 막장이면 막장이지 덜하지 않은 수많은 미국 방송들이 아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실 것 같습니다.)

뭐. 저도 외국의 사례를 좀 들어봐서 압니다만. 외국의 IT 및 게임업계가 무작정 천국이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미국에서도 주당 80시간 이상의 근무로 인해 가족들이 못살겠다 하는 일도 있고,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레벨디자이너였던 밥 핏치는 처음에 주당 50시간 일하다. 나중엔 주당 80시간 일하다. 나중엔 아예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EA도 노동강도 문제 때문에 제소된 적도 있을 만큼. 그네들도 야근 문제는 꽤 심하죠. 하지만 그 나라에서도 과연 우리 나라처럼 CEO쯤 되는 사람이 당당하게 언론에서 야근수당 안 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우리나라같은 용자짓은 하기 어려울 겁니다.

우스갯소리인지 현시창을 나타내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소리가 있습니다.

'1년동안 하루 8시간씩 일 시켜서 이 정도 나왔네?

그럼 1년동안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 시키고 주말 휴일 반납시키면 퀄리티 더 잘 나오겠지'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소리는 요즘은 제조업에서도 까이죠. 하물며. 창조성을 요구하는 게임 같은 문화 콘텐츠에서 이 짓을 하면 답이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규 근무시간이 이러저러한 일로 버려지는 일만 없다면, 야근을 하건 그렇지 않건 제품의 퀄리티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근이 누적되면 피로는 쌓이고 머리는 안 돌아가지요. 야근을 해봤자 생산성을 저해시킨다는 연구결과도 꽤 존재하지만. 이런 연구결과는 가뿐히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전부터 게임계를 게임뇌 같은 이상한 소리로 까대는 꼰대 아저씨들 및 사이비 전문가님들이 득시글거리는 광경을 보며, 한때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멍청이들. 그런 거 가지고 까대지 말고 게임업계의 야근 실태 같은 것을 파악해서 회사를 궁지에 몰아붙이는 게 더 효과적일 텐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게임업계를 까대는 부류에 속하는 분들 중에. 이런 방법을 써도 떳떳한 인물이 대한민국에 별로 없는 것 같더군요.(있다 해도 그런 분들은 게임업계를 까는 데에 별 관심이 없으시고). 왜 게임을 유해하다고 하는 분들의 레퍼토리가 게임뇌니 폭력성이니 하는 그모양 그꼴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는... 네. 잡소리였습니다. 에휴.


- The xian -


덧글

  • Megane 2015/03/06 22:30 #

    아 진짜 저 색히들이!!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다. 라고 말 해주고 싶네요. 아오 빡쳐.
  • 카샤피츠 2015/03/07 03:07 #

    게임을 천직으로 삼았다면 저런 소리 못 하죠.
    이미 오래전에 끝난 겁니다. 게임업계는

    2부리그가 없는데 1부리그에 집착 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제 남은 건
    게임업계의 탈게임화 현상 뿐입니다. 모두가 그걸 바라고 있죠.
  • NoLife 2015/03/07 03:18 #

    야근해서 업무 효율이 올라가는건 딱 1주일 정도이고 그 후부터는 오후에 집중하면 4시간이면 끝낼 일을 야근으로 저녁 먹고 밤참 먹으며 12시간씩 걸려서 끝내게 되더군요.
    10시간씩, 20시간씩 야근 굴러본 사람들이 저런 소리를 하니 더더욱 이해가 안 가네요.
  • 별일없는 눈꽃마녀 2015/03/07 04:08 #

    송재경의 말을 듣다보면 생각나는 말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수업 시간에 딴 과목 공부한다더니"


    김치게임이나 뽑는 것들이 유별나게 티를 내긴 졸라 티를 냄
  • 2015/03/07 11:5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WeissBlut 2015/03/07 12:37 #

    일단 야근 관련해서는 포괄적임금제라고 해서 노동법 위반은 아닐겁니다. 물론 그래서 저 말이 잘한 말이냐면 그건 아니지만…
  • The xian 2015/03/07 13:02 #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 당시에 포괄산정된 근로시간이 정확히 명시되고 임금 구성항목에도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야 효력이 있지요. 또한 포괄산정된 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하였을 경우에는 별도 수당을 지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거 지키는 기업을 이 바닥에서는(제가 본 바로는) 못 본 것 같네요.

    만일 사업주가 포괄임금제 체계도 안 정해놓고 '임금에 야근수당 다 포함된다'는 식으로 취급하면 그건 포괄임금제가 아닙니다.
  • WeissBlut 2015/03/07 14:35 #

    사실 그게 문제긴 한데… 아무튼 "야근수당을 안준다" 이 한마디만으로는 저게 노동법위반이라고 확정할 수 없단게 제가 하고싶은 말이었습니다.
  • 몽부 2015/03/07 20:56 #

    안그래도 이거 읽으면서 짜증이 좀 났었지요.
    그 .. 근데 .. 생각해보니 .. 저희 회사는 이거 말고 다른 문제도 많더라굽쇼.;;
    그후로 다른 의미로 짜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 (크흡)
  • 2015/03/18 22:3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3/19 14:4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5/03/25 17:3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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